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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빛과 어둠의 마술사 렘브란트

by 꽃범 2023. 3.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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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네덜란드 황금시대의 대표화가 렘브란트

타고난 재능과 끊임없는 연구, 작품 활동으로 당대 최고의 화가로 삶을 살았던 네덜란드의 대표화가 렘브란트의 삶과 그의 작품, 그와 관련한 영화를 알아봅니다.

 

젊은 나이에 성공했지만 말년에는 힘들었던 삶

렘브란트 하르멘스존 반 레인은 1606년 네덜란드의 레이덴에서 태어났습니다. 제분업자인 아버지 하르멘 헤리트스존 반 레인의 아홉 명의 아들 중 여덟째 아들로 태어난 그는 어려서부터 똑똑했습니다. 1613년 레이덴의 라틴어 학교에 들어간 그는 1620년 14세의 나이로 레이덴 대학에 입학했지만 화가의 길을 가고자 마음먹고 중도에 그만두었습니다.

렘브란트는 역사화가인 야코브 아삭츠 반 스바넨뷔르흐 아래에서 약 3년간의 도제 생활을 하면서 미술의 기초와 원리를 배우고, 그림과 판화를 배웠습니다. 3년 후 그는 더 이상 배울 것 없이 탁월한 수준의 실력을 갖추게 되었고 암스테르담으로 이주하여 역사화가인 피터르 라스트만의 아래에서도 약 6개월간 미술을 배웠습니다. 이 시기에 렘브란트는 라스트만으로부터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고, 이 시기가 그에게는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기간으로 그의 화풍은 이때 많이 확립되었다고 합니다.

렘브란트는 자신의 능력을 확인하고 다시 레이덴으로 돌아왔습니다. 레이덴에서 그는 계속해서 작품활동을 이어나갔습니다. 리번스와 함께 공방을 차렸고, 회화 뿐만 아니라 에칭을 공부하고 에칭화도 제작하였습니다.

1630년 그의 나이 26세일 때, 그의 아버지가 사망하고 그는 다시 암스테르담으로 갔습니다. 더 많은 부와 명성을 얻기 위해 그는 암스테르담에서 전시회를 열었고, 전시회는 성황을 이루었습니다.

그는 외과 의사들이 해부학 강의를 주제로 주문한 집단 초상화를 그렸습니다. 당시의 집단 초상화들은 동일한 조명 아래에서 사람들이 증명사진과 같은 딱딱한 모습이였던 것 과 달리, 렘브란트는 의사들이 해부학 수업을 듣고 있는 자연스러운 모습을 그렸습니다. 인물들의 시선을 다양하게 표현하였고 또한 주목해야 할 부분에 핀 조명을 켠 것처럼 밝게 표현하고 주변은 어둡게 표현해서 밝은 부분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효과를 주었습니다. 이 그림을 계기로 렘브란트는 부유한 귀족들의 초상화를 그리며 더 많은 인기와 명성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1634년 렘브란트는 사스키아라는 여인과 결혼하였습니다. 사스키아의 집안은 학식있고 명망 높은 부유한 집안이었습니다. 그는 더 넓은 작업실이 있는 집으로 이사했고 많은 제자를 두게 되었습니다.

렘브란트는 많은 그림 주문을 받았고, 그 그림으로 더 유명한 화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와 사스키아 사이에 태어난 아기들이 다 얼마 살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그러다 1641년 넷째 티투스가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사스키아의 건강이 좋지 않았고, 그녀는 1642년 사망하였습니다. 렘브란트는 그 후 20살 연하의 가정부 헨드리키에 스토펠스와 사랑에 빠졌고 그의 아들과 헨드리키에와 행복하게 살았지만, 사스키아의 유언으로 인하여 결혼은 하지 못했습니다.

1650년 네덜란드의 경제상황이 나빠지면서 렘브란트의 재정상태도 나빠졌습니다. 그는 결국 1656년 파산신청을 하였고 변두리 지역으로 이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후 1669년 그가 사망할 때까지 작품활동에 매진하다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빛을 이용한 화가의 명작 살펴보기

<툴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 (1632)

암스테르담의 시장이기도 했던 툴프 박사와 암스테르담의 외과 의사들은 렘브란트에게 자신들의 집단 초상화를 의뢰하였고 그는 이 작품을 그렸습니다. 빛은 각각 인물들의 얼굴과 시체를 비추고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그곳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합니다.

 

<야간 순찰> (1642)

이 작품은 그 크기가 4.37 * 3.63m에 달하는 대작입니다. 그리고 렘브란트의 대표작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원래 작품의 제목은 <프란스 반닝 코크 대장과 빌렘 반 로이텐부르그의 민방위대>로, 프란스 반닝 코크 대위가 이끄는 디스트릭트 2 지구의 민병대가 출동하는 장면을 묘사한 이 그림은 실제로 18명의 민병대원들이 각각 돈을 내고 자신의 모습을 그려달라고 의뢰한 작품이었습니다.

심지어 이 작품은 야간에 순찰하는 것이 아니라 낮의 민방위대의 모습을 그린 것인데 세월의 흐름으로 인해 작품이 어두워져 <야간 순찰>과 같은 제목이 붙여졌습니다.

렘브란트의 작품이기에 이 작품 역시 딱딱한 초상화가 아닌, 빛을 이용해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있도록 묘사된 인물들을 볼 수 있습니다.

네덜란드 황금시대를 대표하는 대표작이기도 하여 전쟁 중에도 보존을 위해 안전한 곳으로 옮겨져 보관되었고, 전쟁 후로도 습격을 받았지만 현재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자화상>

렘브란트 역시 자신의 자화상을 많이 그린 화가입니다. 젊은 시절의 당당한 모습, 말년의 모든 것을 꿰뚫어보는 듯한 눈빛을 담은 모습 등 시기별로 표현된 모습도 달라서 그의 그 시절 삶이 어땠는지 엿볼 수 있습니다. 아마도 그는 자신을 직접 그리면서 인물화 그리는 연구를 하였을 것입니다.

 

렘브란트의 삶을 다룬 영화 <야경>

2007년 개봉한 영화 <야경>은 <야간 순찰>이라고도 불리는 렘브란트의 작품과 제목을 같이 합니다. 캐나다, 프랑스, 독일, 폴란드, 네덜란드, 영국이 제작하였습니다.

전체적인 스토리는 렘브란트의 삶을 다룬 전기영화이지만 특히 <야경> 작품을 그리면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주로 다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영화는 연극과 같은 형식으로 진행되는 특징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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