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세잔의 생애 알아보기
폴 세잔은 프랑스 엑상프로방스에서 1839년에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은행가로 집안은 부유했지만 세잔이 화가가 되는 것은 반대했습니다. 세잔은 콜레주 부르봉이라는 중학교 과정을 다닐 때 에밀 졸라와 만나 우정을 쌓게 됩니다. 그 후 세잔은 아버지의 뜻을 따라 법학과로 진학하여 공부했지만 대학을 졸업하지 않고 엑상프로방스에 있는 시립개방미술학교에 등록하여 미술 공부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1861년 파리로 갔지만 몇 개월 만에 다시 고향 엑상프로방스로 돌아옵니다. 파리에서 그는 심한 우울증을 겪었지만 결국 화가로서의 성공을 다짐하며 이듬해 다시 파리로 갔습니다. 파리에서 열심히 미술을 공부하고 작품활동에 전념했지만 1862년 그는 살롱전에서 통과하지 못하고 낙선전에 작품을 전시하였습니다. 그 후로도 세잔은 살롱전에서 한 번도 입선하지 못합니다. 그 후 20년이 흐른 1882년에서야 그의 작품은 살롱전에서 처음으로 통과하였습니다.
1870년대 세잔은 인상주의 화가들과 교류하며 자신의 그림에 인상주의 기법을 녹이게 됩니다. 그 당시 화가들은 정물화보다는 풍경화를 선호하였는데 세잔은 정물화도 많이 그렸습니다. 그의 다른 인상주의 화가들과 같이 풍경화를 많이 그렸지만 정물화를 실험적으로 그리는 것에도 계속 도전했습니다. 그의 정물화에서는 새로운 선의 배치, 전통적인 원근법의 탈피 등으로 이전의 정물화들과는 다른 자신만의 방식을 표현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세잔은 자신은 인상주의가 아니라고 했지만 인상주의 화가들과의 교류는 계속되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그림은 점점 인상주의를 벗어나 구도와 형상을 단순하게 표현하고 인상주의 화가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햇빛을 표현했습니다.
1886년 세잔은 오르탕스 피케와 결혼을 했습니다. 오르탕스 피케와는 1869년 처음 모델과 화가로 만났지만 동거를 했을 뿐 아버지의 허락을 구하지 못해 함께 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1886년 그의 나이가 47세, 피케와 낳은 아들이 14세가 돼서야 결혼을 한 것입니다. 같은 해 그의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세잔은 이 즈음 생트빅투아르산 연작을 그렸습니다.
아버지의 사망 후 유산을 상속받아 부자가 되었지만 그는 계속 검소한 생활을 이어나갔습니다. 그리고 작품활동에만 매진했습니다. 생트빅투아르산을 계속 그렸고 목욕하는 사람들을 많이 그리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개인전을 열기도 성공한 화가로서의 말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그는 1906년 폐렴으로 사망하였습니다.
폴 세잔의 다양한 명작
<생트빅투아르산>
프랑스 엑스프로방스 지방에 있는 나무가 없는 돌산으로 세잔은 이 산에 매료되어 이 산을 주제로 한 작품이 18점 이상 됩니다. 그는 산의 본질을 파악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석하고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원근법은 파괴되었고 자연은 단순한 삼각형, 사각형 등의 도형으로 표현되었습니다. 그가 끊임없이 탐구했던 입체감, 색채감, 도형의 단순함 등을 모두 담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카드놀이 하는 사람들>
이 작품은 세잔의 대표작 중 대표작으로 꼽히는 작품입니다. 세잔이 그린 카드놀이 하는 사람들은 총 다섯 작품으로 미국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파리의 오르세미술관 등에서 소장하고 있습니다. 카드놀이 하는 사람들을 주제로 한 르냉 형제의 작품은 이미 엑상프로방스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었습니다. 아마 세잔은 그 작품을 보고 이 작품을 그렸을 것이라고 추정합니다. 그는 이 그림을 그리기 위해 많은 습작도 그렸습니다.
<대수욕도>
세잔이 생트빅투아르산만큼이나 많이 그린 주제가 목욕하는 사람들입니다. 누드화는 예전부터 미술사에서 많이 볼 수 있는 흔한 소재이지만 세잔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표현하고자 계속 발전시켜 나갔고 그만의 형태, 색채, 자연과 어우러진 여성의 누드를 표현하였습니다. 이 작품은 훗날 피카소, 마티스 등의 화가들에게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폴 세잔과 에밀 졸라의 이야기를 담은 <나의 위대한 친구, 세잔>
<나의 위대한 친구, 세잔>은 엑상프로방스의 중학시절 만난 에밀 졸라와 폴 세잔의 약 40년 간의 우정을 담은 프랑스 영화입니다. 실제로 두 사람은 긴밀한 우정을 이어 나갔습니다. 에밀 졸라는 파리에서 먼저 유명한 작가가 되었지만 세잔은 아직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에 졸라에게 많은 의지를 했습니다. 둘은 친구로서, 경쟁자로서, 함께 성장하는 사이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우정은 에밀 졸라가 성공하지 못한 화가에 대한 소설을 쓰고, 그 소설을 읽은 폴 세잔이 그 이야기가 자신을 모티브로 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절교를 선언하고 그 후로 다시 만나지 않았습니다. 이런 그들의 이야기를 잘 묘사한 영화입니다.
'문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신을 사랑한 화가 에곤 쉴레 (0) | 2023.02.16 |
---|---|
영국이 사랑한 화가 윌리엄 터너 (0) | 2023.02.15 |
고통을 예술로 승화시킨 화가 프리다칼로 (0) | 2023.02.14 |
죽음 후 세계가 사랑한 화가 빈센트 반 고흐 (0) | 2023.02.13 |
소설 <달과 6펜스>의 모티브 폴 고갱 (0) | 2023.02.12 |
댓글